폭탄주 정치

독서하기 2013. 3. 7. 09:28

 한국의 폭탄주는 1983년 당시 춘천지검장이었던 박의태 검사장 (현 한나라당 의원)등이 참여한 '춘천지역 기관장 술모임'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모임에서 폭탄주를 즐겨 마시던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각 계각층에 퍼뜨려 우리 사회에 폭탄주가 대유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1999년 6월 초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은  대낮에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고 "공기업이 파업하면 검찰이 이렇게 대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검찰이 조폐공사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켯다. 진행구 부장은 국회청문회에서 "왜 폭탄주를 마시는가"라는 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양주가 너무 독해서"라고 답했다.

 2000년 10월23일 저녁, 당시 외교통상부 이정민 장관은 정부중앙청사 근처 한정식집에서 약 25명의 기자및 10여명의 외교통상부 간부들과 만찬을 하며 폭탄주 2잔을 마신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안아보니 가슴이 탱탱하더라"방송국 심야토론에 나가 졸릴때마다 방청객으로 나온 구로공단 여공들의 짧은 스커트 속 팬티를 보면서 잠을 깼다" 등 성적 비하발언을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이에 이정빈 장관은 "부덕의 소치"라며 사과했다.

 폭탄주 관련 정치권 구설수의 원조로는 소위 '국방위 폭탄주 사건'이 꼽힌다. 1986년 3월,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과 야당이었던 신민당, 국민당의 국방위 소속 의원들은 임시국화를 마치고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을 포함한 육군 수뇌부들과함께 서울의 한 요정에서 '폭탄주 파티'를 벌였다. 그 자리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소위 '똥별발언'을 하여 육군 수뇌부들을 자극함으로써 촉발된 험악한 분위기는 결국 집단난투극으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이대희 육군 인사참모부장은 깨진 유리파편에 눈가가 찢어졌고, 이대희 소장의 이단옆차기에 안면을 강타당한 남재희 의원은 그 자리에서 실신했다.

 이듬해 육군참모총장 박희도는 술에 대한 기본 상식과 예절, 술과 병영생활의 관계, 선진 군인의 음주자세 등을 내용으로 하는 [술과 병영생활]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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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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