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안에 있는 사람은 변화를 못 느낀다. 반면 밖에 있는 사람에게 변화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분명하다. 내가 독일에서 느낀 한국의 변화가 그렇다.

내가 유학을 갔던 1987년에 독일에서 볼 수 있는 한국산 물건이라고는 겨우 스웨터나 손톱깍이 정도였다. 그것도 독일에서 가장 싸구려 잡화점인 빌카(bilka)같은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먼 이국땅에서 나름대로 애국하겠다고 처음에는 국산 손톡깍이만 샀다. 하지만 손톱이 제데로 깎이지 않은 손톱을 이빨로 뜯어내며 손톱깍이도 제대로 못 만드는 조국에 절망했다. 가끔 국산TV도 살 수 있었다. 당시 골드스타(Goldstar) 14인치 TV는 독일 시장에서 가장 싸구려 TV였다. 역시 애국하는 마음으로 그TV를 샀지만 고작 1년이 지나지 못해 고장 났다. 결국은 수리비가 더 들어 내다 버렸다. 이후 비슷한 가격의 삼성TV를 샀으나 이 또한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망가졌다. 하지만 상황은 불과 10년 만에 크게 달라졌다.

내가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던 2000년에 독일의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컴퓨터 모니터는 한국의 삼성 모니터였다. 그때까지 가장 비싼 모니터였던 소니를 제치고 삼성 모니터가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아우토반 위에서 독일 자동차들 사이를 현대 차가 달리고 있었다. 현대 차는 독일 차에 비해 소음이 많고 속도가 떨어져 시내에서나 타는 차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속 좁은 독일인들이 세계에서 자동차를 만들 줄 하는 몇 나라에 한국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껴 시샘하느라 하는 말에 불과하다. 역사상 이렇게 빨리 발전하는 나라는 이제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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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혀끝까지 와서 맴도는 대답이 있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겁니다."

 

"다른 건 다 가르쳐놓고 왜 쉬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15년 동안 오로지 골프에 둘러싸여 화려한 골프여왕으로 등극한 박세리가 최근 부진에 빠져 아버지에게 한

항의의 말이다.

"골프에 지쳤다. 이제 골프에서 잠시 빠져나오고 싶다. 나는 골프말고 다른 일상생활을 즐기는 게 필요하다."

 

최고의 인물들에게는 나름의 노는 법이 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잭 니콜라우스는 낚시광이고 필 미켈

슨은 시간이 나면 개인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으로 변신한다. 카레이싱 F1챔피언인 미하엘 슈마허는 축구

달인이다. 여자 테니스 세계 1위였던 마르티나 힝기스는 대회에 출전할 때 가장 먼저 주변 승마 클럽을 물색

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말한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모든 사람은 자기 능력에 맞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빛난다. 그러나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은 혀끝에서 맴돌던 바로 그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

니 여러 곳에서 여가와 놀이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초청이 왔다. 지난 2년 동안 참으로 많은 기업, 학교, 공무

원 교육 기관 등에서 '노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다녔다.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내 이야기

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참 한가한 소리나 한다고 혀를 차는 이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자존심 상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대개 이런 강의 요청을 받을 때이다.

"다른 교육들이 너무 어렵고 딱딱하다 보니 좀 재미있고 부드러운 강의를 해주십사하고.....,"

"교수님 강의가 재미있다고 해서....."

"직무교육 사이에 좀 쉬어가는 느낌을 주는 강의로 교수님 강의를 넣었습니다."

그럴 때는 일단 한숨을 크게 쉰다. 그리고 한참 후에 대답한다.

"차라리 개그맨을 부르시지요?"

내가 하는 '노는 이야기'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독일에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도록 13년간 심리학을 공부한 내가 '노는 이야기나(?)' 하고 다니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왜곡된 여가 문화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창의력과 재미가 동의어다. 사는 게 전혀 재미없는 사람이 창의적일 수 없는 일이다. 성실하기

만 한 사람을 21세기에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에 갑갑한 사람이 근면 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물론 21

세기에도 근면 성실은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것만 각지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재미를 되찾

아야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한번 잘 살펴보라.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모

두들 죽지못해 산다는 표정이다.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의 사

는  표정은 더 심각하다.

우리는 경제가 어려운데 노는 이야기나 한다고 혀를 차는 이들의 걱정을 따라 하다가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우리나라 경제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도 앖을 것이다. 새해에

한 해 나라의 경제를 예측하는 경제학자들의 입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경제학자들이 예상

하는 경제는 항상 나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경제가 좋다고 전망했다가 '사이비'로 찌히는 것처럼 억울한 일

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쁘다고 했다가 좋아지면 애초의 나쁜 예상에도 불구하고 좋아지 이유를 찾아 분석

하면 된다. 좋아진 이유는 아무래도 좋기 때문이다. 이유가 장황할수록 '전문가'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나쁘다고

했다가 좋아지는 것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을 것이라고 했다가 좋아지는 것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을 것이라고 했다가 나빠지면 절대 못 참는다. 이 원리를 아는 영악한 경제학자들의 한 해 예상은 항상

부정적이다.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노는 이야기냐고 혀를 차는 이들이 퍼뜨리는 불안감은 사스나 조류독감보다도 더 빠르게

전염된다. 그들은 21세기 국가경쟁력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저 불안할 뿐이다. 그

들의 여가 문화에 대한 이해 또한 무지하기 짝이 없다. 그들에게 노는 것이란 그저 폭탄주와 노래방뿐이다. 그

러니 경제가 어려울 때 폭탄주에 젖어 '오바이트'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

대로 폭탄주와 노래방이 노는 것의 전부라면 경제가 어려울 때 놀아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경제가 아무리 좋아져도 절대 놀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천박한 놀이 문화라면 아무리 경제가 좋아도 한순간에

모두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잘먹고 잘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못마땅하면 이렇게 욕한다.

"에이, 잘먹고 잘 살아라."

우리는 모두 재미있게 놀려고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우리는 못마땅한 그들에게 또 이렇게 욕한다.

"놀고 있네!"

잘못한 사회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잘먹고 잘살고 잘 노는 사람은 없게 되어 있다.

행복하고 재미있으면 욕먹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웃는 표정, 행봇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TV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정치가, 한국의 대표적 CEO의 표정에서 도대체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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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류의 위대한 학자 몇 사람을 머리에 떠올리고 생각나는 사람들이 어느 민족인지 확인해보라. 두 사람 중 하나는 유대인일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심지어는 유대인은 선천적으로 우리와 다른 유전자를 타고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유전자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의 교육방식과 문화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노동 철학은 다른 민족과 확실하게 구별된다. 그들의 노동 철학은 "열심히 일해라"가 아니다. '우선 잘 쉬어라'다.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세계 어느 곳에 흩어져 살든 유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오죽하면 예수를 상대로 안식일에 환자를 고쳤다고 시비를 걸었을까. 안식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6년을 열심히 일했으면 1년은 정확하게 쉬어야 한다. 안식년이다. 안식년에는 땅의 경작도 쉬어야 한다. 자연도 쉬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안식년에 밭에서 나는 곡식은 가난한 자들의 것이었다.

안식일, 안식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식년을 7번째 보낸 다음해, 즉 50년째는 '희년'이라 불렀다. 희년에는 경작을 쉴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빚도 탕감해주었다. 모든 계약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가족에게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해였다.

유대민족은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노동의 핵심을 쉬는 것에 두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 따라갈 수 없는 창의적인 민족이 될 수 있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쉼의 철학이 빠진 노동의 철학은 사람을 일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만드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일해서 얻은 것으로 살아가지만 또한 쉬면서 얻은 것으로 일할 수 있다. 쉼이 없는 노동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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